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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교회 4월24일 주보말씀 (고전15:50-58)
작성일 :  2022-05-03 16:34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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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역사적 의의(意義)  (고전15:50~58)

 창세 이후로 지구대를 돌리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기 통치입니다. 또 하나 창세 이후로 이 지구위에 새겨지는 숱한 역사의 사건들과 인간생명을 움직이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 나사렛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금요일), 안식일 지난 주일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이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것은 초대 기독교의 신앙이고, 설교의 중심이며, 그것이 곧 복음의 진수였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이 위대한 부활사건 앞에서 부활의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역사의 전환기를 이루웠습니다.

 사도바울은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했습니다. 이전 것은 옛것, 곧 그리스도 밖의 것, 말하자면 죽음이전의 것입니다. 새것은 그리스도안의 것, 말하자면 죽음 이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은 사망권()과 생명권()을 나누어 놓은 분수령입니다. 말하자면 그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에서 생명의 권세로 인간생명을 전환시키는 힘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연호를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바로 역사의 나이를 측정하는 신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의 부활은 죽음을 극복하는 새생명 차원의 새종()의 기원, 곧 제2의 생명입니다. 부활의 힘! 그것은 옛사람의 마침이며 새사람의 시작을 의미하는 전환입니다.

  . 기독교를 출산시키는 밀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자기희생, 곧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한 말입니다. 또한 자기희생의 결과 부활의 결실인 예수 그리스도, 교회 출생을 예고한 말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새생명이 나오는 것, 이것은 자연계나 영계에 예외없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 이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 저 골고다언덕, 십자가에 떨어진 한알의 밀알! 그것이 사흘만에 다시 부활로 싹트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지구위에는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수많은 새생명을 출산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처럼 생전에 혹은 사후에 미움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로 그처럼 생전과 사후에 사랑과 영광을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아무리 생전에 미움을 받던 자라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스탈린이나 히틀러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는 그가 죽은 후 2,000년의 역사는 오히려 더 왕성하게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2,000년간의 가시밭 골짜기를 걸어왔습니다. 온갖 역사의 도전 속에 피 흘려 왔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주()라고 하는 기독교 본연의 꽃밭은 파괴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한알의 밀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밀알의 힘이 오늘의 세계역사를 가동시킨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 그것은 실로 무서운 힘이었습니다. 이유는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온갖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요, 창조세력입니다.

 성경에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딤후2:11)라고 했습니다. 어떤 종교가 그 힘이 있으려면 그 자체에 얼마만큼 역사적인 진실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종교의 역사성이 얼마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현실적인 힘이 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인 줄 압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종교는 한낱 헛된 신화나 환상에 불과하고 말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이 사건이야말로 역사중의 역사요 사실중의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사건이 어떤 신화나 환상이나 소설의 조작이 아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이 피 묻은 기독교의 사건이 일어난 나라와 장소와 때와, 당시 국제적인 정세를 세밀히 압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사건을 전해준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하고 소박한 자들인가도 잘 압니다. 그 시대는 분명 미신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그리스의 역사가요 지리학자인 스트라보와 플루타크, 그리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가 이 사실을 존중시하던, 바야흐로 문명적 새역사관에 눈뜬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들은 사상 유례없이 엄청나게 많이 논의된 사건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에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힘이요 새창조를 용출시켰습니다. 그의 부활사건은 예루살렘을 적시고, 연쇄적으로 반응되어 마침내 당대의 세계 수도인 로마를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외가 없이 죄와 죽음과 불안과 모순의 갈등에서 갈피를 못 잡는 역사 속에 기독교는 가는 곳마다 새로운 소망을 창조해 주는 활력소였습니다. 죄와 죽음의 비참함을 지닌 인간과 그 인간 역사일 동안은 기독교는 영원히 그 인간역사를 지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여 만인의 숙적인 죽음을 잡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민족의 정신구조의 형성과 역사적 방향설정은 그 민족의 종교설정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나 민족이 어떤 신앙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과 생활방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의 강은 대게 그 민족 대다수의 신앙이 흐르는 곳으로 흘러 온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는 우리의 보람과 영광과 그 소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새 기운을 마시고 힘입어 우리 앞에 있는 부활의 찬란한 새날들을 향해 힘 있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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