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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모이기를 더욱 힘쓰라 (히 10:23-25)
작성일 :  2020-11-19 13:23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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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라는 말은 희랍 원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말인데 그 뜻은 밖에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구원 받기로 예정을 입은 자들이 부름을 받아 공적인 장소에 모여 온 하나님의 시민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르심을 받은 회중들이 지정된 장소에 모인 모임을 가리킴인데 이렇게 지정된 장소에 모이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큰 특색입니다. 이 모임의 중요성은 교회의 존립 자체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교회를 중지 내지 무시 또는 중요시 하지 않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도 볼 수 있고 사도들의 교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 집회의 사실을 언급한 것을 보니 당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자들이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一.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이론이나 그 경우

  1. 역사적 경향 기독교는 사랑과 행실에 족하며 집회의 번거로움은 오히려 기독교 정신과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당시 기독교인 대부분이 유대교에서 개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정부 당국과 유대인들의 극심한 박해로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타 모임 자체를 부정시하는 무교회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2. 현대적 경향 지정된 장소(교회당)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생활과 사업상의 분주함 때문입니다. 세속적 향락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교회 자체의 여러 부조리함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교회 모임이 거치는 돌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신자들의 짐이 되는 교회를 무엇 때문에 두었을까요(16:15-20)?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것은 신자로서 의무감이나 종교의식의 한 규례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보다 더 차원 높은 이유가 있습니다.


  二. 모일 이유

  1.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신령한 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입니다(벧전2:5). 하나님은 당신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정된 장소에서 경배 받는 이 일을 최고로 기뻐하십니다(12:5-6). 그리고 지정된 예배의식을 통하여 경배를 받으십니다. 무질서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거기에는 공동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 헌금이 있고 설교가 있고 성례(세례와 성찬)와 권징이 있습니다. 축도가 있습니다(96). 이러한 중요한 일들이 사가에서 개인적으로 집행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집, 능력의 집, 성령의 전인 교회당에서 거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들과 순서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제사하도록 지정되었습니다(22:2). 야곱은 벧엘에서,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신정시대에는 성전에서지금은 교회당(세계만방에 산재해 있는)에서 예배드리도록 지정 받았습니다. 2. 말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모임은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라고 했고 교회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천주교)은 의식(미사)중심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간증 중심, 흥분, 감정, 감각적인 육체 중심입니다. 그러나 참 교회는 말씀전파가 그 중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위대한 영적 양식의 보급소이며 말씀의 센터입니다. 즉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을 거듭나게 합니다(3:3-7)(벧전1:23). 연약한 자들을 강하게 해줍니다(벧전2:1,2)병든 자들을 낫게 해줍니다(119:9,15:3). 초대 박해 3백년 동안의 교회는 죽음을 각오하고 모였습니다. 그들은 박해자의 눈을 피해 카타콤이라고 하는 땅굴을 여러 수십 갈래로 파고 들어가 예배를 드렸고 성도들의 시체를 매장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며 빠른 속도로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三. 축복 운동의 강화를 위해 교회에 모여야 합니다.

  모임은 힘을 상징하며 정신력의 표현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전투하는 영적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철통 같이 단결하여 꽉 짜여져 있는 원수들의 작전에 응전해야 합니다. 전투하는 병사에게 개인주의는 망조입니다. 이 시대에 마귀의 전술 중 하나는 모이기를 폐하는 것입니다(25). 주님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11:23)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출석을 고의로 아니하는 자는 주님을 반대하는 자요 헤치는 자입니다. 주님은 모이기를 명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모이라고 했습니다(18:19-20). 우리 영적운동의 유력한 군세의 기반은 모이는 곳이 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133:1-3)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다고 했습니다. 신구약을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는 대부분 모임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장성의 비결도 모임에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의 족적은 인간 모임의 흔적입니다. 교회의 흔적도 성도 모임의 흔적입니다. 교회에 모여 기도함에 응답이 내려오고 성령의 불이 일어납니다. 이곳에서 마귀가 도망치고 마귀 왕국이 파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됩니다. 기독교는 모이는 교회 운동입니다. 모이지 않는 곳에 기독교는 설립되지 아니합니다. 기독교는 모임에서 시작해서 진행되고 결국 최후도 새하늘 새땅에서 함께 모이는 것으로 그 절정에 오르기 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이 흰옷을 입고 새노래를 부르면서 최후의 그 시간 최후의 장소 영원한 나라 새 예루살렘에 모일 것입니다. 우리 모여서 예배드립시다(주일 오전, 오후, 수요일 밤, 새벽 기도회, 기타 집회). 우리는 모여서 말씀을 받읍시다. 우리는 모여서 십자가적 공동전선을 이루며 영육간의 주님의 축복을 받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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