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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5 성도 고난의 의의Ⅰ (욥1:1-222)
작성일 :  2021-09-16 14:13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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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고난의 의의(意義) (1:1-22)

 

욥기서의 대주제는 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의인(성도)이 당하는 고난의 의의(意義)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먼저 의인 욥을 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욥의 사람됨을 명백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그는 큰 경건자였습니다. 그의 큰 경건은 몇가지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순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순전은 외식(外飾)과는 반대되는 의미로서 내적 진실함을 뜻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직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대인관계에서 곧은 사람’, ‘옳은 사람의 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성결의 사람으로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범사에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5). 이러한 그의 생활은 삶의 규례가 되고 생리가 되고 습관이 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러한 욥의 큰 경건의 삶을 자랑했습니다(8). 2. 그는 사회적으로 큰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그의 사회적 영향력은 그의 큰 물질적 ’()였습니다(3). 본문을 살펴보면 그는 당시 사회에서 대단한 거부였습니다. 또한 그는 사회적으로 명예를 떨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동방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큰 자’()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같은 상황을 통해 당시 동방사회에서 그의 위인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의인에게 임한 고난입니다.

1. 의인에게 임한 고난은 하나님 자신의 섭리적 산물입니다(8~12). 사탄에게 하신 하나님의 욥에 대한 자랑을 들은 사탄은 항변을 했습니다. 곧 욥의 경건생활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모든 것이 부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물질적으로 가난해지고 삶의 환경이 어려워지면 그도 별수 없이 주를 욕하리이다고 했습니다(11). 하나님은 사탄으로 하여금 욥에게 생명 이외에 모든 환난을 가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에게 임하는 환난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결재가 아니고서는 허락될 수 없는 신적산물(新敵産物)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의인에게 임한 고난의 참상은 전 생()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물질적 환난입니다(15,16,17). 그래서 욥은 순식간에 그 많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그가 만난 물질적 시험이었습니다. 자녀 10남매의 급사(急死)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욥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질병의 환난이었습니다(2:7,8). 여기에 더하여 아내로 말미암는 조롱(2:9), 절친했던 친구들로부터의 비난(19:2,3), 많은 종들로부터의 외면(19:15,16), 그를 아는 모든 자들로부터 외인 취급당하는 수치(19:6-7), 더욱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욥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시험(19:6,7)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욥을 괴롭게 할 것이 없을 만큼 그는 죽음에 이르는 환난과 고난을 씹고 있었습니다.

 

. 고난의 의의

고난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의인 곧 성도들에게 임하는 고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욥기를 중심하에 생각해 봅니다. 이는 절대하신 하나님의 주권(主權) 신앙을 체험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절대하신 하나님 주권신앙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인간의 과거 곧 본래를 바로 앎에서 나타났습니다. 본문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솔로몬도 이런 고백을 했고(5:15)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딤전6:7). 인간의 현재를 바로 앎이었습니다. 본문 21절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린 수많은 재산과 자녀들, 그리고 아내, 부자와 가장 큰 자라고 하는 명예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마지막을 바로 앎이었습니다.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고 했습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인생의 마지막 정돈은 하나님에게 가서야 끝이 난다고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본분을 다하는 신앙, 곧 예배신앙이었습니다. 절대하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드리는 욥의 예배에는 몇가지 특색이 보입니다. 엄청난 비보 앞에 욥은 일어났습니다. 주저앉아 망연자실함이 아니라 지고하신 하나님의 행사 앞에 경외심을 나타내는 최상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환난의 폭풍을 타고 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고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극도의 자기 부정과 회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엎드려 경배함은 최고의 경외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였습니다. 21절에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주권신앙에 자리 잡은 욥의 예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숨 쉬는 여기는 결코 천국이 아닙니다. 정말 의인과 악인이 함께 섞여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악인이 득세하고, 아니 악인의 세상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향한 순전과 이웃을 향한 정직과 하나님께 향한 경외(신앙)라고 하는 그 선한 이유, 복스러운 이유 때문에 세상에서 더 큰 고난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향한 주일예배 성수와 여러 사랑의 선행 때문에 뜻하지 않는 고난과 손해를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 고난이 어떤 때는 죽음에 이르는 순교적 환난에까지 이릅니다. 우리는 이런 극한 환난의 태풍 속에서 그 고난의 의미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만이 온세상을 주장하신다, 하나님만이 전세계를 지배하신다는 하나님 절대 주권신앙을 경험하는 도구로, 그가 만난 고난의 의미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결코 무의미하게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온갖 종류의 일들을 하나님 절대 주권주의 신앙으로 감사하고 받으면 그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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